제주고씨
시조 고을나는 탐라국 개국전설에 나오는 제주3성씨 시조 중의 한 사람이다. 삼성혈 전설에 나오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탐라국의 망망한 바다 가운데에 우뚝 솟은 태산에서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가 출생한다. ▲고을나는 제주고씨 ▲양을나는 제주양씨 ▲부을나는 제주부씨의 시조가 된다.
제주고씨는 자손이 번성하면서 여러 본관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근래에 모두 제주고씨로 환적했다. 제주고씨가 명문가로 성장한 것은 고려 태조 때 탐라국 태자 고말노의 아들 고유, 고강, 고소 때부터다.
조선 초기의 인물로는 고득종이 있다. 세종 때 한성판윤 등을 지냈으며 명나라와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외교에 활약이 많았다. 태필, 태정, 태보, 태익 등 네 아들이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전성시대를 누렸다.
조선조의 인물로 누구보다 이름을 드러낸 사람은 고경명이다. 임란 때 의병을 일으켜 순국한 고경명과 그의 아들 고종후, 고인후 3부자는 제주고씨에서 분관된 장흥고씨 인물이다. 고경명은 동래부사로 있다가 귀향한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장 먼저 광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금산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당시 그의 나이 60세였다. 둘째 아들 고인후도 함께 순절했다. 그 자리에 없었던 큰 아들 고종후는 진주성 싸움에 참가했다. 그러나 성이 함락되자 김천일, 최경희 등과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 3부자가 나라에 목숨을 바쳤다. 전남 광산군 대촌면의 압촌리 마을은 장흥고씨의 집성촌이다. 이곳은 고경명이 나고 자란 고향이다. 그의 증조대에서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으며 지금도 고경명의 자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고경명의 다섯 아들 가운데 장남인 고종후를 비롯해 고순후, 고인후, 고용후의 후예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