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 img img
image
회원가입시 광고가 제거됩니다

영국이 미국에 기축통화를 내준 이유? 원래 파운드가 과거애는 기축통화였잖아여.그런데 무슨 계기로 어떻게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가

원래 파운드가 과거애는 기축통화였잖아여.그런데 무슨 계기로 어떻게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가 됐나요?최대한 자세하게 설명 좀 해주세요.

과거 대영제국의 파운드화가 누렸던 기축통화의 지위가 미국 달러로 넘어간 것은 어느 한 가지 사건 때문이 아니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영국의 국력이 쇠퇴하고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패권이 확립된 필연적인 결과였습니다. 이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계 역사상 최초의 군사적 패권국은 대몽골제국으로서, 13세기의 세계 패권국으로 등극한 몽골제국-대원제국(원나라)의 제국 공식 화폐인 '교초(交鈔)'가 세계 역사상 최초의 기축통화의 지위를 가지고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하지만 대원제국(원나라)의 몰락 후, 오랫동안 세계 패권국은 등장하지 않았고 그렇게 세계 기축통화의 지위를 가진 화폐도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으로 부흥한 대영제국이 패권국으로 등장하면서 기축통화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19세기부터 1차 세계대전인 1914년 이전까지 파운드화가 기축통화였던 이유는 명확합니다.

중세시대의 대원제국(원나라)이 전 세계에 걸친 광대한 식민지들을 통해 세계 대무역로인 '실크로드'를 전개했던 것처럼,

근대시대의 대영제국(영국)도 거대한 무역 네트워크를 형성했고, 이 네트워크 안에서 파운드화는 국제 무역과 결제의 기본 단위였습니다.

게다가 영국은 "세계의 공장"이기도 해서, 영국의 공산품을 사려면 파운드화가 필요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파운드화에 대한 수요가 높았습니다.

영국은 파운드화를 황금에 고정(1파운드 = 특정량의 황금)시키는 금본위제를 역사상 최초로 확립하고 안정적으로 운영했습니다. 이는 파운드화의 가치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를 주었고, 각국 중앙은행이 외환보유고로 파운드화를 선호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듯 런던은 당시 최대의 금융 중심지로서, 국제적인 자본이 모이고 거래되는 곳이었습니다. 이 시기 파운드화의 위상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전 세계 무역 결제의 60% 이상이 파운드화로 이루어졌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영국의 짧은 영화도 곧 끝이나는 계기가 발생했으니 바로 영국의 몰락과 미국의 부상이라는 결과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1차 세계대전의 발생이 그것입니다. 영국은 전쟁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막대한 빚을 져야 했고 특히, 전쟁 물자를 공급해준 미국에 엄청난 채무를 지게 되면서 세계 최대의 채권국에서 채무국으로 전락하기 시작하는 비참한 신세가 됐습니다.

영국은 해양 초강대국으로서 해군력만큼은 세계 1위였으나 육군력에서는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이 대영제국보다 훨씬 강력했기에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파운드화를 마구 찍어내면서 황금과의 태환을 일시적으로 중단했습니다. 이는 파운드화의 신뢰도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반면에 이와는 정반대로, 신대륙에 위치해 있는 미국은 직접적으로 1차 세계대전에 얽혀있지 않았기에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구대륙에서 치열하게 1차 세계대전을 하고 있던 일본과 중국, 유럽 국가들에 전쟁 물자와 자금을 빌려주며 엄청난 부를 축적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양의 황금들이 미국으로 흘러 들어갔고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미국이 가장 많은 황금 보유국이 된 계기가 됩니다. 어쨌든 이로 인해 미국은 최대의 채권국으로 단숨에 떠올랐습니다.

1차 대전이 끝난 1918년, 영국은 다시 경제적 영광을 되찾기 위해 무리하게 금본위제로 복귀했지만 이미 약해진 경제력으로는 파운드화의 가치를 지탱하기 어려웠고, 이는 대공황과 맞물려 영국 경제에 큰 부담을 주었습니다.

게다가 이런 대영제국의 숨통을 끊어놓는 가장 결정적 사건이 발생했으니, 그것은 바로 "2차 대전"이었습니다. 1차 대전이 영국 망조의 시작이었다면, 2차 대전은 파운드화의 시대에 종말을 고하는 결정타였습니다.

1차 대전 때 이미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의 육군력이 영국보다 훨씬 강했다는 걸 보여줬는데 2차 대전 때는 아예 영국 본토가 나치 독일에 의해 직접적인 공격을 받거나 혹은 위협을 받는 등 1차 대전보다 훨씬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1, 2차 대전은 아무래도 아시아, 유럽 전선에서 주로 행해지다 보니 해군력 싸움도 있지만 각국의 본토에서 싸우는 육군력 싸움이 많았고 그렇기에 나치 독일의 강력한 육군력을 막기에는 영국의 경제력은 너무 크게 추락했습니다.

그렇기에 산업 기반 자체가 황폐화된 영국은 어쩔 수 없이 나치 독일의 준동으로부터 본토를 지키고자, 무리하게 미국에게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면서 장비대여법 등 미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이렇게 2차 대전의 피해가 커져가면서 영국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망해가고 미국은 연합국의 "병참 기지" 역할을 하며 엄청난 생산력을 과시하며 경제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그리고 2차 대전이라는 거대한 싸움과 충돌이 끝났을 때, 무려 "황금 보유고의 약 70%"를 미국이 차지하게 될 정도였습니다. 이는 전 세계 어떤 국가도 미국의 경제력에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구대륙의 전통적인 열강들인 중국, 러시아, 일본, 독일, 영국 등은 이미 1, 2차 대전을 거치면서 국토 전체가 전쟁터가 되어 경제력이 크게 소모되었고 게다가 전후 복구 작업에 막대한 예산이 들어갔기에 이 시기부터는 소련이 패권 경쟁국으로 흥하게 된 "냉전기"까지 사실상 미국 혼자의 독무대가 펼쳐진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연합국 대표들은 미국 뉴햄프셔주의 브레턴우즈에 모여 전후 세계 경제 질서를 논의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달러가 기축통화로 공식적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공식적인 대관식이었던 1944년 브레턴 우즈 체제인 겁니다. 이 시절의 미국은 자국의 압도적인 황금 보유고를 바탕으로 새로운 통화 체제를 제안했습니다.

바로 "황금 1온스 = 35달러로 고정한다. 라는 금태환제"입니다. 다른 모든 국가의 통화는 미국 달러에 고정시킨다는 것이죠. 이는 오직 미국 달러만이 황금으로 교환될 수 있음을 의미했으며 다른 국가들의 통화는 달러를 통해서만 황금과 연결될 수 있었기에, 미국 달러는 사실상 황금과 동일한 지위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한 국제기구로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친숙한 그 이름인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이 설립되었고, 이 또한 미국의 주도하에 이루어졌습니다. 영국의 대표였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방코르(Bancor)"라는 새로운 국제 공용 통화를 제안했지만, 이미 망해버린 영국은 압도적인 경제력을 가진 미국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던 것입니다.

쉽게 설명드리자면 1, 2차 대전으로 인해 금본위제를 포기한 영국의 파운드는 국제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었고, 황금의 대부분을 보유한 미국 달러가 그 신뢰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44년 브레턴 우즈 협정을 통해 미국 달러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국제 통화 제도가 공식적으로 출범하면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는 제도적으로 확고해졌습니다.

즉, 기축통화의 지위는 단순히 약속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국가의 압도적인 경제력, 군사력, 그리고 국제적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세계사적으로 본다면 중세시대의 세계 최강국인 대원제국(원나라)이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교초(交鈔)가 중세시대의 기축통화가 됐던 것이고, 근대시대의 해양 선진국인 대영제국(영국)의 파운드가 기축통화가 됐던 것이며, 1~2차대전과 브레턴 우즈 회의를 통해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 됐던 것입니다.